2024년 6월 15일 토요일

Cold Case / 시 (습작)

 

 연기가 피어오르는 파이프 파이프를 문채 굳게 닫은 입술

입술에서 새어나오는 불가해적 언어 언어는 말이 되지 않는다

말이 되지 않지만 소리가 된다 소리가 된 꿈이 흘러간다

흐르는 꿈은 연기와 천천히 천천히 사라지는 단서


쓰다만 펜에서 흐르는 잉크 잉크가 하얀색 종이를 검게

검게 물든 종이 종이에 적힌 말은 해독불가 해독불가니 실마리가 되지 않는다

단서가 되지 않지만 기억이 살아난다 살아난 기억이 흘러간다

흐르는 기억은 잉크와 서서히 서서히 사라지는 단서


레스트레이드 경감의 노크


이제 방안에도 없는 단서 단서 없는 홈스, 왓슨


그리고 나

Ⓒ김군


* 시 공부 모임 중 쓴 습작 시입니다.

* 비록 습작이지만, 이 시는 김군의 창작물입니다. 무단 도용을 금합니다. 
 부분 인용이나 기타 사용 여부에 관해서는 댓글 등으로 문의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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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규원의 시가 가진 고유한 시선(viewpoint): 시공부 모임 발제문 (2024. 6. 1)

 2024. 6. 1


오규원의 시가 가진 고유한 시선(viewpoint)



  1. 시선: 주체와 객체 사이


 시선(視線)이란, ‘눈이 가는 길 혹은 눈의 방향'이며 ‘주의 또는 관심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을 의미한다. 시라는 맥락 안에서 시적 화자(혹은 시인)를 ‘시선을 가진 이'라고 할 때, 우리는 일반적으로 주체적 시선을 떠올린다. 예를 들어, “그녀가 거기에 있었다", “바람이 파묻힌 구름 속 반짝이는 뱀을 보았다' 라는 연이 있다고 가정할 때, 시적 화자는 그녀가 거기 있음을 인지하고 말한 것이며, 환상이나 꿈에서든 현실에서든 뱀을 보고 말한 것이다. 즉, 시적 화자는 바라 보는 주체로서 바라 본 무언가를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시선은 단순히 보는 것을 의미하는 것 이상으로 한 주체가 이해(comprehend)하고 표현(express or describe)하는 것까지 아우른다. 영어 동사 see가 ‘알다, 이해하다’ 라는 의미도 가진다는 걸 상기하면 좋을 것 같다. 참고로 이러한 설정에서 우리는 ‘보는 이(독자)’가 된다.


 앞서 말한 ‘주체적 시선'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우리는 시적 화자가 자기 시선으로 말하는 바, 즉 시를 보게 되니까 말이다. 그러나 오규원 시에서 시적 화자는 주체와 객체 사이 어딘가 즈음에 있다. 


여러 곳이 끊겼어도

길은 길이어서

나무는 비켜서고

바위는 물러앉고

굴러 내린 돌은 그러나

길이 버리지 못하고

들고 있다


  • <산과 길> 전문


이 시에서 산과 길이 있는 풍경을 바라 보고 말하는 주체가 있다. 하지만 이 주체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을 있는 그대로 마치 서술하듯 말한다. 무엇보다 ‘길을 바라보는 이’ 이전에 ‘길, 나무, 바위, 돌’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길, 나무, 바위, 돌은 각자의 ‘있음'과 그와 관련된 자신들만의 이야기가 있어 보인다. 물론 시 마지막 부분은 시선을 가진 이로서 주체가 확실한 느낌이 든다. 길은 사람처럼 “굴러 내린 돌을 버리지 못하고 들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돌이 길 위에 있는 모습을 극적으로 표현한 것뿐이다'라고 누군가는 말할 수도 있겠다.


잎이 가지를 떠난다 하늘이

그 자리를 허공에 맡긴다


  • <나무와 허공> 전문


이 시에서도 “잎이 가지를 떠나는” 그리고 “하늘이 그 자리를 허공에 맡기는" 일을 전하는 주체가 있다. 그러나 시에서 우리가 주목하게 되는 건 ‘잎이 있는데, 가지를 떠나고, 하늘이 그 자리를 허공에 맡기는’ 상황이다. 벌어지고 있는 일을 전하는 주체는 있을지라도, 시에서 두드러지는 건 바로 그 벌어지고 있는 일 자체이며 그 안에서 각자 존재를 나타내는 이미지 혹은 물건(thing)이다. <나무와 허공>은 <산과 길> 보다 시선을 가진 이의 주체적 성격이 훨씬 덜 드러나는 게 특징이라 할 수 있다.



  1. 시선: 한창은 지났는가? 아니면 새로울 수 있는가?


 주체와 객체 사이의 시선이 돋보이는 오규원의 시집 『두두』의 시들은 철 지난 시적 기법 혹은 시적 표현인가? 한 주체의 시선으로 지극히 내밀한 것을 꿈 혹은 환상이나 찰나의 포착으로서의 현상(phenomenon)으로 표현된 최근(2010년 후반부터 지금까지)의 여러 시들을 보면, 그런지도 모르겠다. 시대가 다르면 다루는 주제도 다르고, 문학 표현 방식도 달라지기 마련이니 말이다. 


 오규원의 시에서 드러난 특유의 시선이 새로운 방법으로 탄생하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다. 신미나의 시집 『당신은 나의 높이를 가지세요』에서 본 몇 편의 시가 그것이다.


쟁반에 무당벌레가

날아들었다


갸웃거리는 더듬이의 궁리

시고 붉은 향로를 따라


보라, 이 고요한 집중을

무당벌레는

자신의 무늬를 조롱하지 않고

앞으로 간다

골똘히 간다


  • <오후 세시> 부분


“쟁반에 무당벌레가 날아들었다"에서 “골똘히 간다"에 이르기까지 시선을 가진 이는 현재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서술하는데, 그 중심에는 무당벌레가 있다. 무당벌레는 시선을 가진 이와 상관없이 날아들었고, 앞으로 그리고 골똘히 간다. 여기서는 생략된 시 중반에 가면 시적 화자가 쟁반에 칼을 대어 무당벌레가 더는 과일 쪽으로 가지 못하게 하는데, 칼은 벽이 된다. 이 시에서는 단순히 사람이 주체가 되어 대상을 바라 보는 일에서 비껴나와 무당벌레가 사람을 (정확히는 사람의 행위, 칼로 길을 막아선 것) 바라 보는 입장으로 보이기도 한다. 시집에는 이와 비슷한 시가 여럿 있다. 이 시들은 나, 사람이 주체로서 바라 보는 것을 탈피해 타자, 사물이 바라 보는 것으로 현실을 드러내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신미나의 노력과 오규원의 그것의 단순 비교는 불가능하며, 지양해야 할 일이다. 다만, 날이미지와 최소의 사건과 언어로 표현된 오규원의 시에서 나타난 주체와 객체 사이 시선과 나(주체)의 시선에서 한발짝 나아가 사물(또는 무엇이든)의 시선으로 나를 주체에서 벗어나게 하여 현실을 새롭게 바라보려는 신미나의 노력은 어딘가 맞닿아 있는 게 아닐까? 이렇게 볼 때 오규원의 시선은 ‘새로운 시선'으로 지금도 계속 태어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의 것과 새로 태어나는 시선은 같을 수 없을 것이다. ‘새로운'이라는 개념 자체가 예전의 것과는 ‘다른'이라는 의미를 함의하고 있으니 말이다.


Ⓒ김군



* 2024년부터 시 공부 모임을 하고 있습니다. 모임에서 발제를 맡아 작성한 글입니다.
 
* 비록 좋은 글은 아니지만, 이 글은 김군의 창작물입니다. 무단 도용을 금합니다. 
 부분 인용이나 기타 사용 여부에 관해서는 댓글 등으로 문의 바랍니다.


#김군 #시 #습작시 #시쓰기 #시공부 #시공부모임 #번역작가번외편 #시도씁니다

2024년 3월 14일 목요일

2024년 첫 글, 그리고

 어쩌다 3월이나 되서야 2024년의 첫 글을 블로그에 올립니다. 긴 시간 동안 쓰려다 멈칫한 순간이 여러 번 있었다. 그런데 글이 마음에 들지 않아 결국 '쓰다 지우고 쓰다 지우고'를 반복하다가 지금에 이르렀다.  

 2023년 12월, 시를 공부하는 수업은 별 탈 없이 마무리했다. 그 후 시를 쓰는 일을 향한 열정은 잠시 접었다. 예전에 소설 쓰기 수업 후 그랬던 것처럼. 게다가 작년 후반에 결정된 번역 2건의 계약이 모두 취소되는 일도 겪었다. 하아.

 번역이 먹고사니즘에 기본 역할을 못한다는 건 둘째치고, 번역 경력을 위한 길이 막힌 것이니 힘이 빠졌다. 요즘은 이런저런 책과 다양한 정보를 가지고 이른바 N잡러가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중이다. 고민 끝에, 두어 가지 일을 일단 시작하기로 했다. 하나는 너튜브를 활용하는 일, 다른 하나는 한국전통주를 배우는 일이다. 

  1. 너튜브는 일단 무언가라도 해보자는 마음으로 AI를 활용한 음악 채널을 만들었다. 조회수의 극한 슬픔을 보여주는 채널이지만, 너튜브에 무언가를 업로드하는 걸 처음으로 해서 그런지 나름 재미가 있다. 썸네일과 음악 재생 시 필요한 화면 만들기, AI 음악 생성 활용 등등, 의외로 간단한 채널 하나에도 큰 품이 든다. 전업 너튜버가 웅장해 보이는 순간이다. 사실 이건 경험에 중점을 둔 것으로, 야심찬 아이템을 기획하려고 한다. 무얼 하려고? 아직 미정. 뇌 속을 이런 저런 메모 거리로 마구 휘젓는 중이다. ('브레인 스토밍'이라고 했던가)
  2. 내가 영어가 된다는 (된다는 말이지 실력이 엄청나다는 건 아님) 점을 살려 한국전통주를 가지고 무언가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K가 대세인 게 얼마나 오래 가겠냐만은, 당분간은 괜찮으리라 전망한다. 하지만 '이것만 하면 오케이'라는 얼토당토아니한 생각은 쓰레기통에 휙. 열심히 배우자.
 작년에 함께 시 수업을 들은 2명의 우수 수강생 둘이서 진지하게 시 공부를 하자고 결의를 다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함께 공부하면서 시 쓰는 일을 멈추지 말자는 취지다. 영광스럽게도 이 모임에 초대되었다. 소설 쓰기와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나는 흔쾌히 수락했다. 물론 내가 두 분에게 어떤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나저나 올해 진지하게 다시 프랑스어 공부하기로 했는데... Je sais pas!

 2024년, 3월이나 되어서야 올해가 시작한 기분이다. 학생도 아닌데.
 

 - 김군

 [별 볼 일 없는 글도 무단 도용은 금지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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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d Case / 시 (습작)

   연기가 피어오르는 파이프 파이프를 문채 굳게 닫은 입술 입술에서 새어나오는 불가해적 언어 언어는 말이 되지 않는다 말이 되지 않지만 소리가 된다 소리가 된 꿈이 흘러간다 흐르는 꿈은 연기와 천천히 천천히 사라지는 단서 쓰다만 펜에서 흐르는 잉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