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28일 목요일

아버지 생신날 (산문) - 주제: 돌봄


 작년 성탄절은 유난히 추웠던 걸로 기억한다. 그래서 이틀 후 27일도 몸이 와들와들하기에 충분했다. 상대적으로 따뜻한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맞이한 2023년, 그리고 오늘(12/27)은 작년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생신이다.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버지의 생신날이 너무 춥지 않은 것도.


 아버지와의 관계가 어땠는지는 이 글에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아버지가 루이소체 치매라는 병을 앓았고, 마지막 3년여 동안 그를 돌보는 데에 내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다는 거다. 루이소체 치매는 우리가 흔히 미디어에서 접할 수 있는 알츠하이머와는 다소 다른 증상을 보인다. 몇몇 증상을 말해보자면 이렇다. 소화 기능은 떨어지고 특히 삼킴(swallowing) 장애와 배변 장애로 고생한다. 또 근거 없이 의심하거나, 폭력성을 가감 없이 드러내기도 한다. 섬망 증상으로 헛것도 보이는 데 이 헛것이 아버지한테는 현실이었다. 배회하려는 성향도 생겨 어디를 못 나가게 해야 하는 일도 많았다. 움직임이 점점 둔해지는 병이지만, 여전히 움직일 수 있어서 신경이 곤두서곤 했다. 무엇보다 루이소체 치매 환자는 기억력이 나빠지기는 해도, 가족의 얼굴이나 익숙한 몇몇 정보는 잘 기억한다. 즉, 내 아버지 같은 극 내향인은 가족 이외의 사람이 자신을 돌보는 걸 끔찍이도 싫어했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1년 전 즈음, 몸을 움직이지 못하셨다. 배회의 걱정은 덜었지만, 돌보는 데에 필요한 일상적인 일이 많이 늘었다. 아버지는 어느 정도 확실한 의사 표현이 가능한 아기였다. 이때 노인용 기저귀가 나름 다양하다는 것을 알았고, 어디 회사의 제품이 좋다거나 가성비가 가장 좋은 약국 혹은 마트는 어디에 있다거나 하는 등의 정보에 익숙해졌다.


 ‘돌봄’이 자기 현실의 일부 혹은 전부가 되면,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먹는 것, 자는 것, 버는 것, 쓰는 것, 즉, 생활 전반이 ‘내'가 아닌 ‘그 혹은 그녀'에게 집중된다. 육체적, 신체적 피로 그리고 스트레스, 경제적 어려움 등은 자연스레 따라오는 결과일 뿐이다. ‘돌봄'은 사회적 현실 이전에 한 개인의 도망칠 수 없는 현실이다. 나 역시 이런 일은 내게 멀리 있는 일인 줄로만 여겼다. 그런데 불청객처럼 찾아와 내 삶과 일상을 확 바꾸어 놓고는, 작년에 이르러 스르륵 사라졌다. 허둥대기도 하고 필사적으로 노력도 했던 시간.


 내 2권의 독립출판 번역 시집은 작년에 아버지를 돌보면서 일궈낸 책이다. 무엇이었을까, 그토록 치열하게 번역하고, 글을 쓰고, 책을 만들 수 있던 건? 2023년은 뭔가 하는 일 없이 바쁜 기분으로 살았던 거 같다. 나는 치열하게 살지 않았던 걸까? 아무튼, 중요한 건 지금이고 다음이다. 2024년에는 나 자신도 돌보고 더 나아가는 한 해가 되기를.

Ⓒ김군


*이 산문은 김군의 창작물입니다. 무단 도용을 금합니다. 

  부분 인용이나 기타 사용 여부에 관해서는 댓글 등으로 문의 바랍니다.


#돌봄 #산문 #아버지 #치매 #루이소체치매 #돌봄의문제 #돌봄과개인 #독립출판작가의삶 #번역작가산문


댓글 없음:

댓글 쓰기

Cold Case / 시 (습작)

   연기가 피어오르는 파이프 파이프를 문채 굳게 닫은 입술 입술에서 새어나오는 불가해적 언어 언어는 말이 되지 않는다 말이 되지 않지만 소리가 된다 소리가 된 꿈이 흘러간다 흐르는 꿈은 연기와 천천히 천천히 사라지는 단서 쓰다만 펜에서 흐르는 잉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