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8일 금요일

Different person, different preference

 사람마다 성격이 다르듯, 취향도 다르다.
 사실 취향에는 많은 요소가 들어 있다. 따라서 취향은 어쩌면 한 사람의 삶과 그것을 이루는 복잡다단한 부분이 조합된 결과물이다. 성격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책도 그렇다. 보라, 많은 이가 베스트셀러에 열광할 때 흥칫뿡을 날리는 사람도 있지 않은가. 사실 나도 그런 사람 중에 하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먹으면서 그저 흥칫뿡만 날릴 뿐, 그 많은  이들의 선택을 존중한다. 이유가 뭐가 되었든 그들은 그 책을 선택했고, 거기서 무언가를 얻었다고 봐야 하니까.

 문학을 좋아하는 나와 문학을 좋아하는 다른 이는 취향이 비슷할 수도 다를 수도 있다. 취향이 확고해서, 피곤한 경험을 한 적이 있는가? 나는 그렇다. 그리고 지금도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이 피곤함은 여러 감정 상태를 의미할 수 있다. 예를들어, 나는 책을 좋아하고 많이 구입하는 이들에게 인기있는 작가의 작품에 전혀 감흥을 느끼지 못할 때가 있는데, 누군가는 나를 희한한 인간으로 바라보기도 하는 것이다. 요즘은 의의로 비슷한 취향을 공유하는 사람이 늘어 이런 피곤함을 조금은 덜었다. 아, 기쁘다.

 솔직히 나는 한국 소설과 시를 많이 읽어 보지 않은 사람이다. 주로 프랑스 문학과 영미 문학을 즐겨 읽는 사람이다. 한때 괴테에 빠지기도 했다. 아무튼 조금 과장을 하자면 세계 문학 쪽에 눈이 더 가는 유형이다. 거의 4년이 다 되어가는 귀국 후, 한국 소설과 시를 나름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했다. 읽으면서 이 취향의 문제가 연기처럼 피어올랐다. 이런저런 이유로 '인기있는 작가'의 소설과 시를 읽고 나서 나는 물었다. '왜?' 전혀 감흥이 없던 작품에서 '아, 이런 걸 요즘 독자는 좋아하는 구나'의 가르침은 얻었다. 심지어 명망 있는 작가의 추천작 혹은 화제작을 읽고도 그런 '왜?'는 종종 피어 오른다.

 요즘 시 수업을 듣다 보니, 한국 시에서 느끼는 그런 '왜?'를 새삼 떠올리게 되었다. 10여 년 전후의 시인의 시를 '초현대'(대략 1950 ~90 년대를 '현대'라고 가정한 상대적 의미로)라고 할 때, 그들의 시를 읽으면서 나의 '왜?'는 더 커졌다. 나는 언어가 가진 미적 감각에 이렇게도 둔한 걸까? 물론 그중에서도 무릎을 탁 치면서 감동을 선사하는 작품들도 많다. 그러나 나의 의문은 사라지지 않으니, 이는 '취향의 문제'라고도 할 수 있겠다. 내가 '왜?'를 품는다고 해서 그런 시들이 나쁘다거나 수준이 낮다거나 그런 말은 결코 아니다.

 무엇보다 내가 잘 나서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게 아니다!
 다른 글에서도 밝혔지만, 난 심지어 엉망진창 운문을 쓰고는 시라고 부르기도 하는 사람이다. 하하!

 나름 시 공부를 본격적으로 하면서 조금씩 '왜?'에 관한 답안을 작성 중이라는 생각이 든다. 완전한 대답은 없겠지만, 그래도 요즘 작가와 독자에 관한 이해, 나아가 '요즘 취향'에 관한 이해가 늘어나길 바란다.


 - 김군

 [별 볼 일 없는 글도 무단 도용은 금지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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